제1부

도원결의와 황건적의 난

삼국지연의 제1회 ~ 제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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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말기의 혼란

천하의 대세란 나뉜 지 오래면 반드시 합쳐지고, 합쳐진 지 오래면 반드시 나뉘는 법이다. 삼국지연의는 이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후한(後漢) 왕조가 200여 년간 천하를 다스려 왔으나, 그 말기에 이르러 조정은 환관(宦官)과 외척(外戚)의 권력 다툼으로 극심하게 부패하였다. 환제(桓帝)와 영제(靈帝) 시대에 이르러 십상시(十常侍)로 불리는 환관 집단이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고, 매관매직(賣官賣職)이 공공연하게 자행되었다. 벼슬을 돈으로 사고파는 일이 벌어졌으니,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연이은 자연재해와 역병, 그리고 가혹한 세금 수탈은 민심을 극도로 불안하게 만들었다. 각지에서 유민(流民)이 발생하고, 굶주린 백성들은 산적이 되거나 종교 집단에 의탁하여 연명하였다. 이러한 혼란의 한가운데에서 거록군(鉅鹿郡)의 장각(張角)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장각은 남화노선(南華老仙)에게서 《태평요술(太平要術)》을 전수받았다 하여, 부적과 주문으로 병을 고치고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의 가르침은 빠르게 퍼져 나가, 불과 수년 만에 수십만의 신도를 거느리게 되었다. 장각은 자신을 대현양사(大賢良師)라 칭하고, 두 아우 장보(張寶)·장량(張梁)과 함께 천지인(天地人) 삼장군을 자처하며 거사를 준비하였다.

중평(中平) 원년, 서기 184년 갑자년(甲子年). 장각은 마침내 봉기의 깃발을 올렸다. 그 구호는 "창천이사 황천당립, 세재갑자 천하대길(蒼天已死 黃天當立, 歲在甲子 天下大吉)"이었다. '푸른 하늘(한 왕조)은 이미 죽었으니, 누런 하늘(태평도)이 마땅히 서리라. 해가 갑자에 있으니 천하가 크게 길하리라.' 수십만 교도가 머리에 노란 수건을 두르고 일제히 궐기하니, 이것이 바로 황건적의 난(黃巾賊之亂)이다. 한 왕조의 지방 관리들은 순식간에 무너졌고, 조정은 공포에 휩싸였다.

도원결의: 세 영웅의 만남

탁군(涿郡) 탁현(涿縣)에 유비(劉備)라는 사내가 있었다. 자(字)는 현덕(玄德)이요, 중산정왕(中山靖王) 유승(劉勝)의 후손으로 한 왕실의 먼 종친이었으나, 가세가 기울어 어머니와 함께 돗자리와 짚신을 짜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유비는 키가 일곱 자 다섯 치(약 175cm)에 두 귀가 어깨까지 늘어지고, 팔이 무릎 아래까지 길게 내려왔다고 전해진다. 어릴 적부터 큰 뜻을 품었으나, 가난한 형편에 학문을 깊이 익히지 못하고 노식(盧植) 문하에서 잠시 수학하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는 따뜻하고 너그러워, 누구든 그를 한번 만나면 마음을 열게 되는 인덕(仁德)을 지니고 있었다.

황건적의 봉기 소식에 조정에서 의병 모집 방(榜)을 내걸자, 유비는 이를 보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그때, 뒤에서 우레와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내대장부가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울 생각은 않고, 어찌 한숨만 쉬고 있소!" 돌아보니, 키가 여덟 자(약 190cm)에 표범 같은 머리, 고리눈, 제비 같은 턱을 한 사내가 서 있었다. 그가 바로 장비(張飛), 자는 익덕(翼德)이었다. 탁군 사람으로 대대로 전장(田莊)과 주점(酒店)을 운영하는 집안이었으며, 돼지를 잡아 술을 빚어 파는 것이 생업이었다. 성격이 호탕하고 무예가 뛰어났으며, 천하의 호걸과 사귀기를 좋아하였다.

유비와 장비가 술집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한 장대한 사내가 수레를 밀며 들어왔다. 키 아홉 자(약 210cm)에 수염이 두 자(약 50cm)나 되며, 얼굴은 대추와 같이 붉고, 봉황의 눈에 누에와 같은 눈썹을 가진 이 사내가 바로 관우(關羽), 자는 운장(雲長)이었다. 하동(河東) 해량(解良) 사람으로, 고향에서 권세를 부리던 토호를 죽이고 오년째 떠돌아다니는 중이었다. 황건적 토벌 의병에 참여하고자 이곳에 왔다 하니, 세 사람의 뜻이 맞아떨어졌다.

장비가 말하였다. "내 집 뒤에 복숭아밭(桃園)이 있는데, 지금 한창 꽃이 만발하였소. 내일 그곳에서 하늘과 땅에 제사를 올리고 의형제를 맺어, 마음과 힘을 합쳐 대사를 도모합시다." 유비와 관우가 기꺼이 동의하니, 이튿날 복숭아밭에 검은 소와 흰 말을 잡아 제물로 바치고, 향을 피우며 하늘에 맹세하였다.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이 비록 성(姓)은 다르나, 의형제를 맺어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쳐 어려움에 처한 이를 구하고 위태로운 나라를 도우리라.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나지는 못하였으나,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죽기를 원하노라. 하늘이여, 이 맹세를 굽어살피소서. 의를 저버리고 은혜를 잊는 자는 천지가 함께 벌하리라." 이것이 천고에 빛나는 도원결의(桃園結義)이다. 나이순으로 유비가 맏형, 관우가 둘째, 장비가 막내가 되었다.

황건적 토벌과 공 없는 전쟁

장비의 재산으로 무기와 군마를 마련하고, 향리의 장정 500여 명을 모아 의용군을 편성한 세 형제는 유주 태수(幽州太守) 유언(劉焉)을 찾아가 황건적 토벌에 합류하였다. 유비는 쌍고검(雙股劍)을, 관우는 냉엄거사(冷艶鋸)라 불리는 82근의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를, 장비는 장팔사모(丈八蛇矛)를 각각 무기로 삼았다. 세 형제의 무예는 가히 만인지적(萬人之敵)이었으니, 처음 나선 전투에서부터 황건적을 크게 무찔렀다.

유비 삼형제는 각지에서 전공을 세웠다. 영천(潁川)에서는 황보숭(皇甫嵩)·주준(朱儁) 장군과 합세하여 황건적의 주력을 격파하였고, 광종(廣宗)에서는 스승 노식(盧植)을 도와 장각의 본거지를 공략하였다. 장각은 병으로 죽었으나, 장보·장량이 남은 무리를 이끌고 항전하였다. 관우와 장비의 용맹함은 전장에서 빛을 발하여, 적군이 그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 도망칠 정도였다. 마침내 황건적의 난은 진압되었으나, 전후 처리 과정에서 유비 삼형제의 공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간신히 안희현(安喜縣)의 현위(縣尉)라는 미관말직을 얻었으나, 이마저도 오래 가지 못하였다. 조정에서 군공으로 관직을 얻은 자들을 도태시키라는 명이 내려오자, 독우(督郵)라는 관리가 와서 유비를 모욕하고 뇌물을 요구하였다. 이에 격분한 장비가 독우를 나무에 묶어놓고 버드나무 가지로 200대를 후려치는 사건이 벌어졌다. 유비는 인장을 독우의 목에 걸어주고 관직을 버린 채 세 형제와 함께 다시 떠돌이 길에 올랐다. 황건적 토벌의 최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으나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 후한 조정의 부패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동탁의 등장과 폭정

황건적의 난이 진압되었으나 천하는 더욱 혼란에 빠졌다. 영제(靈帝)가 붕어하자, 외척 하진(何進) 대장군과 십상시(十常侍)의 대립이 극에 달하였다. 하진은 환관을 제거하기 위해 각지의 군벌을 불러들였으니, 그중 서량(西涼)의 자사 동탁(董卓)에게도 밀서를 보냈다. 그러나 하진은 계획이 누설되어 십상시에게 먼저 살해당하였고, 이에 분노한 원소(袁紹)·원술(袁術) 등의 장수들이 궁궐에 난입하여 환관 수천 명을 학살하였다. 환관과 외척이 모두 몰락한 권력의 공백 속에서, 대군을 이끌고 낙양(洛陽)에 입성한 동탁이 어부지리로 최고 권력을 장악하였다.

동탁은 서량 변경에서 잔뼈가 굵은 군벌로, 그의 수하에는 당대 최강의 무장 여포(呂布)가 있었다. 여포는 본래 병주자사(幷州刺史) 정원(丁原)의 양아들이었으나, 동탁이 적토마(赤兔馬)와 금은보화를 미끼로 유혹하자 정원을 죽이고 동탁에게 투항한 인물이다. 동탁은 여포의 무력을 앞세워 조정을 완전히 장악하고, 나이 어린 소제(少帝) 유변(劉辯)을 폐위하여 독살하고, 그 아우 진류왕(陳留王) 유협(劉協)을 황제로 세웠으니, 이가 곧 헌제(獻帝)이다.

동탁은 스스로 상국(相國)을 칭하고, 군사·정치 모든 권력을 독차지하였다. 그의 폭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니, 낙양의 부호와 명사를 마음대로 죽이고 그 재산을 빼앗았으며, 궁녀를 겁탈하고, 전국에서 수탈한 재물로 미오성(郿塢城)이라는 거대한 요새를 쌓아 30년치 식량을 비축하였다. 역대 황제의 능묘를 도굴하여 보물을 약탈하기까지 하니, 천하 사람들이 모두 이를 갈았다. 낙양의 하늘은 어두웠고, 백성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조조의 칠성보도: 암살 시도와 도주

조정의 중신들은 동탁의 폭정에 분노하면서도 그의 무력 앞에 감히 반기를 들지 못하였다. 그때 한 사람이 나섰으니, 교기교위(驍騎校尉) 조조(曹操), 자는 맹덕(孟德)이었다. 조조는 환관 조등(曹騰)의 양손자로 태어났으나, 어릴 적부터 기지와 권모술수에 능하고 병법에 통달한 인물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치세의 능신(能臣), 난세의 간웅(奸雄)"이라 평하였다. 조조는 사도(司徒) 왕윤(王允)을 찾아가 동탁을 제거할 뜻을 밝혔다.

왕윤은 조조에게 가보인 칠성보도(七星寶刀)를 건넸다. 칠성보도는 칼날에 일곱 개의 보석이 박혀 있는 명검으로, 한 자루면 동탁의 목을 벨 수 있으리라. 조조는 헌상할 보도가 있다는 핑계로 동탁의 처소에 들어갔다. 동탁은 몸이 거대하여 자리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고, 여포는 밖에서 시위하고 있었다. 조조가 동탁 뒤에서 칼을 빼들려는 순간, 동탁이 몸을 뒤척이며 벽에 걸린 거울에서 조조가 칼을 드는 모습이 비쳤다. "맹덕, 무엇을 하는가!" 동탁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천하의 조조도 이 순간만큼은 간담이 서늘하였으나, 재빠르게 무릎을 꿇으며 말하였다. "칠성보도라는 보검을 얻었사옵니다. 상국께 바치려 가져왔사옵니다." 동탁은 반신반의하며 칼을 받아 들었는데, 과연 명검이었다. 조조는 "말을 한번 보아도 되겠습니까?"라 청하여 동탁의 적토마를 빌려 타고는, 성문을 빠져나가 전속력으로 도주하였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동탁이 여포에게 조조를 잡아오라 명하였으나, 조조는 이미 멀리 달아난 뒤였다.

도주 중에도 조조의 행로는 순탄치 않았다. 중모현(中牟縣)에서 관리에게 잡혔으나, 현령 진궁(陳宮)이 조조의 대의에 감동하여 관직을 버리고 함께 도망쳤다. 그러나 조조의 아버지 친구인 여백사(呂伯奢) 집에서 비극이 벌어졌다. 여백사가 술을 사러 나간 사이, 부엌에서 칼 가는 소리가 들리자 조조는 자신을 잡으려 한다고 오해하여 여백사 가족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뒤늦게 그들이 돼지를 잡아 대접하려 했던 것임을 알게 된 조조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차라리 천하를 저버릴지언정, 천하 사람이 나를 저버리게 하지는 않겠다(寧教我負天下人, 休教天下人負我)." 이 한마디에 진궁은 경악하여 조조를 떠났으니, 이 일화는 조조의 냉혹한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면으로 길이 회자된다.

주요 등장인물

유비 劉備, 자 현덕(玄德)
촉한의 시조 / 한실의 후예
중산정왕 유승의 후손이나 가세가 기울어 돗자리를 짜며 생계를 이었다. 어질고 너그러운 성품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인덕의 소유자. 관우·장비와 도원결의를 맺고 한실 부흥을 위한 기나긴 여정을 시작한다.
관우 關羽, 자 운장(雲長)
촉한의 오호대장 / 의리의 화신
하동 해량 출신으로, 82근의 청룡언월도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천하의 명장. 붉은 얼굴에 길게 늘어진 수염이 특징이며, 의리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겨 후세에 무신(武神)으로 추앙받는다.
장비 張飛, 자 익덕(翼德)
촉한의 오호대장 / 호탕한 맹장
탁군의 호걸로 장팔사모(丈八蛇矛)를 무기로 삼는다. 호탕하고 직설적이며 술을 즐기는 성격이나, 전장에서의 용맹함은 만인을 두렵게 한다. 도원결의의 막내로 형들에게 충성을 다한다.
조조 曹操, 자 맹덕(孟德)
위나라의 기틀을 놓은 간웅
환관의 양손자로 태어났으나 병법과 권모술수에 능하다.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라는 평을 받는다. 칠성보도로 동탁 암살에 실패한 뒤, 제후들에게 격문을 보내 반동탁 연합군을 일으킨다.
동탁 董卓, 자 중영(仲穎)
서량의 군벌 / 폭정의 화신
서량 변경의 군벌로 여포의 무력을 앞세워 낙양을 장악한다. 소제를 폐하고 헌제를 세운 뒤 상국을 칭하며 온갖 폭정을 자행하여, 천하 사람들의 공적(公敵)이 된다.
여포 呂布, 자 봉선(奉先)
천하무쌍의 무장
방천화극(方天畫戟)과 적토마(赤兔馬)를 거느린 당대 최강의 무장. "사람 중에 여포, 말 중에 적토"라는 말이 전해진다. 본래 정원의 양아들이었으나 동탁의 유혹에 넘어가 아비를 배신한다.

정사(正史) vs 연의(演義) 비교

1. 도원결의

연의(소설) 유비·관우·장비가 장비의 집 뒤 복숭아밭에서 검은 소와 흰 말을 잡아 제사를 올리고, 생사를 함께하자는 의형제의 맹세를 한다. 삼국지연의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
정사(역사) 진수(陳壽)의 《삼국지》에는 도원결의에 대한 명확한 기록이 없다. 다만 "은혜가 형제와 같았다(恩若兄弟)"라는 표현이 있어, 세 사람이 매우 가까운 사이였음은 확인된다.

2. 장비의 직업과 신분

연의(소설) 장비는 돼지를 잡아 술을 빚어 파는 도살업자·주점 주인으로 묘사되며, 거친 외모와 호탕한 성격이 강조된다. 유비를 처음 만나는 장면도 술집에서 이루어진다.
정사(역사) 정사에서 장비는 유비와 마찬가지로 탁군의 하층 호족 출신으로 추정된다. 도살업자라는 기록은 없으며, 오히려 글씨(서예)와 그림에 뛰어났다는 기록이 있다.

3. 관우의 청룡언월도

연의(소설) 관우의 상징 무기인 82근(약 49kg)의 청룡언월도는 냉엄거사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며, 소설 전편에 걸쳐 관우의 무용을 상징하는 핵심 소품이다.
정사(역사) 언월도(偃月刀) 형태의 무기는 후한~삼국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기병의 주력 무기는 창(矛)과 환두대도(環頭大刀)였으며, 언월도는 송대 이후에 등장한 무기이다.

4. 조조의 동탁 암살 시도

연의(소설) 왕윤에게 칠성보도를 받아 동탁의 처소에 잠입하여 암살을 시도하나, 거울에 비친 모습이 들통 나 실패한다. 보검 헌상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적토마를 빌려 도주한다.
정사(역사) 《삼국지》 및 《후한서》에는 조조의 동탁 암살 시도에 대한 명확한 기록이 없다. 조조가 동탁의 관직 제의를 거부하고 낙양을 떠났다는 기록만 존재하며, 칠성보도 일화는 소설적 각색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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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책 조항

이 콘텐츠는 나관중(羅貫中)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를 바탕으로 학습 및 교양 목적으로 재구성한 줄거리 요약입니다. 원문·번역문·출판사 해설을 대체하지 않으며,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각색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정확한 내용은 원전 및 공인된 번역본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