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전쟁의 시작 - 나폴레옹의 침공
1812년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60만 대군의 침공
1812년 6월 24일, 나폴레옹이 네만강(涅曼河)을 건넜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각국에서 징집된 약 60만의 대군(大軍)이 러시아 국경을 넘은 것이다. 이는 그때까지 유럽 역사상 가장 거대한 원정군이었다. 나폴레옹은 빠른 결전으로 러시아를 굴복시킬 계획이었다. 이전의 전쟁들처럼 한두 번의 결정적 전투로 승리하고, 알렉산드르 1세에게 강화 조약을 강요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나폴레옹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대응했다. 러시아군의 바르클라이 데 톨리 장군은 결전을 회피하고 끝없이 후퇴했다. 러시아의 광활한 영토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프랑스군은 적을 쫓아 깊숙이 내륙으로 진군했지만, 러시아군은 마치 신기루처럼 잡히지 않았다. 후퇴하면서 러시아군은 곡물 창고를 불태우고, 우물에 독을 풀고, 마을을 비웠다. 초토화 전술이었다. 나폴레옹의 병참선은 점점 늘어났고, 보급은 점점 어려워졌다.
톨스토이는 이 장면을 기술하면서 중요한 주장을 편다. 이 후퇴 전략은 누군가가 계획한 것이 아니라, 상황의 힘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라고. 바르클라이가 의도적으로 적을 유인한 것이 아니라, 전투를 벌일 적절한 시점을 찾지 못하여 결과적으로 후퇴가 된 것이라고 톨스토이는 해석한다. 이것이 그의 역사관이다. 역사의 큰 흐름은 개인의 계획이 아니라, 무수한 작은 사건들의 우연한 결합에 의해 결정된다.
쿠투조프의 부임: 기다림의 지혜
러시아 국민들은 계속되는 후퇴에 분노했다. "언제까지 물러나기만 할 것인가!" 바르클라이 장군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자, 알렉산드르 1세는 마침내 미하일 일라리오노비치 쿠투조프를 러시아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쿠투조프는 이미 일흔에 가까운 노장으로, 한쪽 눈을 잃은 전설적인 장군이었다. 그의 부임은 러시아 전체에 희망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쿠투조프가 부임한 뒤에도 러시아군은 계속 후퇴했다. 쿠투조프는 알고 있었다. 나폴레옹의 60만 대군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자살 행위라는 것을. 시간이 러시아의 편이라는 것을. 프랑스군이 러시아 내륙으로 깊이 들어올수록 보급선은 길어지고, 병사들의 사기는 떨어지며, 탈영병은 늘어난다는 것을. 톨스토이는 쿠투조프를 영웅적 전략가가 아닌, 전쟁의 흐름을 읽고 불필요한 싸움을 피하는 현명한 노인으로 그린다.
안드레이의 재입대
나폴레옹의 침공 소식이 전해지자, 안드레이 공작은 다시 군복을 입었다. 이번에 그를 전쟁터로 이끈 것은 7년 전과 같은 영광에 대한 갈망이 아니었다. 조국이 침략당하고 있었다. 그의 영지 뤼시 고리가 프랑스군의 진격 경로에 놓여 있었고, 아버지와 여동생 마리아, 어린 아들 니콜루시카가 위험에 처해 있었다. 더 이상 개인적 이상이 아니라, 조국과 가족을 지키기 위한 의무감이 그를 움직였다.
안드레이는 연대를 이끌고 후퇴하는 러시아군에 합류했다. 병사들과 함께 행군하면서 그는 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경험했다. 귀족 장교로서의 거리감이 아니라, 같은 땅을 밟고 같은 고통을 나누는 동료 의식. 병사들도 그를 존경했다. 그는 공정하고, 엄격하면서도 따뜻했으며, 위험을 함께 나눌 줄 아는 지휘관이었다.
후퇴의 과정에서 안드레이의 영지 뤼시 고리가 프랑스군에 점령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노공작 볼콘스키는 이미 뇌졸중으로 쓰러져 피난 도중 세상을 떠났다. 마리아는 간신히 프랑스군을 피해 탈출했다. 아버지의 죽음 소식을 들은 안드레이의 얼굴은 돌처럼 굳었지만, 그는 울지 않았다. 대신 프랑스군에 대한 차가운 분노가 그의 내면을 가득 채웠다.
러시아 민중의 애국심과 저항
나폴레옹의 침공은 러시아 사회 전체를 뒤흔들었다. 귀족들은 재산을 기부하고 아들들을 전쟁터에 보냈다. 농민들은 자발적으로 의용대를 조직하여 프랑스군의 후방을 교란했다. 프랑스어를 우아하게 구사하던 상류 사회에서조차 러시아어가 애국의 상징이 되었다. 전쟁은 러시아인들의 민족 정체성을 각성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스몰렌스크 전투에서 러시아군은 처음으로 대규모 전투를 치렀지만, 결국 또다시 후퇴해야 했다. 스몰렌스크의 시민들은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떠났다. 프랑스군에게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겠다는 결의의 표현이었다. 이 모든 것이 러시아 민중의 본능적인 저항이었다. 누가 명령하거나 지시한 것이 아니었다. 민중 스스로가 자신의 땅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일어선 것이다.
한편 피에르는 모스크바에서 나폴레옹의 침공 소식을 듣고 이상한 결심을 한다. 그는 성경의 묵시록에서 나폴레옹의 이름을 숫자로 변환하면 666(적그리스도의 수)이 되고, 자신의 이름도 같은 숫자가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폴레옹을 죽이는 것이 나의 운명이 아닌가?" 어리석은 생각이었지만, 피에르는 진지했다.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던 그에게 나폴레옹 암살이라는 "사명"이 생긴 것이다. 이것이 그를 전장으로 이끄는 계기가 된다.
주요 등장인물
역사적 사실 vs 소설
1812년 러시아 원정
이 콘텐츠는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를 바탕으로 학습 및 교양 목적으로 재구성한 줄거리 요약입니다. 번역본·출판사에 따라 해석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정확한 내용은 원문 또는 공인된 번역본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